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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혼식에는 주례도, 사회자도 없었다. 아니 신랑이 사회자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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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혼식에는 주례도, 사회자도 없었다. 아니 신랑이 사회자였다. 1

주례없는 결혼식을 신랑이 직접 사회까지 봤다. “안녕하세요. 오늘 신랑 유현채 입니다. 신랑이 왜 저기에 서 있지? 라고생각하실 분들 계실 겁니다. 실은 제가 오늘 신랑이면서 사회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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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만에 끝난 여동생 결혼식’

 

 

여동생이 하나 있다. 흔한 남매지간처럼 사이가 좋지는 않다. 그래도 결혼하는 여동생에게 좋은 선물이 없을까 해서  ‘오빠의 사회’를 줬다. 이래저래 만족스러웠지만 딱 하나가 부족했다. 섭외된 주례자가 진행한 일반 결혼식이었는데, 폐식까지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식을 올린 결혼식장이 30분마다 신혼부부가 탄생하는 일명 공장형 웨딩홀임을 생각해도 빨랐다. 신랑 신부의 개성을 존중하며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지향하는 나로서는 뒷맛이 썼다.

 

 

 

 

그래서 내 결혼식만큼은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초대할 하객의 구성과 예식장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참석한 사람들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릴 결혼식으로 꾸미려 했다. 말은 쉽지만, 실상은 쉽지가 않다. 특히 대부분의 예비 부부들은 '결혼을 올린 경험'이 없는 상태이니 오죽할까. 다행히도 나는 행사 기획이라면 이골이 났었고, 결혼식 진행도 10년 넘게 해왔다. 그래서 기획이 어렵지 않았다. 오늘은 이 이야기다.

 

 

부모님 입장은 어떻게 하지?

사회자가 개식사를 한 뒤에 이어지는 결혼식 첫 번째 순서는 일반적으로 '화촉점화' 이다.

보통 양가 어머님이 나와 진행하는데, 부모님 모두가 진행하는 걸로 변경했다. 이 과정에서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바로 사회자이면서 신랑인 나의 입장이었다. 

 

내가 사회자겸 신랑인데 부모님 입장과 화촉점화를 진행한 뒤에 “이제 제가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멘트하고 버진로드를 거슬러 올라가 입장한다면 어색한 분위기는 둘째치고 번잡스러워 보일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입장 멘트를 하고 입장 위치에 짠! 하고 나타날지가 풀어야 할 문제였다. 내 해법은 ‘시선을 붙잡고 모습을 감추기’ 였다.

 

간단한 영상으로 하객의 관심을 끌고 그 틈에 입장 위치로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마술쇼나 콘서트에서 볼 수 있는 연출이다.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손자병법에도 나오는 유서깊은 방법이다. 나중에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들이 그러더라 ‘신랑이 없어졌다가 뒤에서 나타나서 놀랐다’고. 순서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다.

 

1) 화촉점화 후 ▶ 2) 영상 안내 멘트 ▶ 3) 홀 암전 ▶ 4) 영상 재생이 ▶ 5) 신랑 입장 자리로 이동 ▶ 6) 영상 종료 후 입장

 

 

동선과 진행 순서는 위와 같다.

 

 

내가 마이크를 들고 입장하는 이유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하객들은 2분 남짓한 영상을 보느라 내가 뒤로 이동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진 신랑이 뒤에서 등장하는 깜짝쇼가 완성 되었다.

 

 

 

가족예식(주례없는결혼식) 혼인서약은?

일반식(주례있는식)에서 혼인서약은 주례자가 신랑과 신부에게 혼인서약 질문을 하고 각각 대답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례자가 없다면 서약을 받을 사람이 없으니 신랑과 신부가 자발적으로 진행하는게 좋다. 사회자가 주례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지만, 나는 별로 권하지 않는다. 뜻깊은 자리이니 이왕이면 주인공들이 직접 서약을 나누길 권한다. 결혼식은 그러라고 하는 행사이기도 하고.

 

합독형 혼인서약. 하객을 보고 서서 진행한다.

 

 

가족예식(주례없는결혼식)에서 혼인서약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서로가 알지 못하도록 각자 준비한 혼인서약문을 서로에게 낭독하는 방법인 '개별형'과 두 사람이 혼인 서약서를 함께 준비해 한 문단씩 번갈아가며 낭독하는 '합독형'이 그것이다.

 

보통 전자는 서로 마주 보고, 후자는 하객을 바라보고 진행한다.. 일장양단이 있습는데, 전자는 신랑과 신부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는 점과 마음이 더 잘 드러날 수 있고, 후자는 실질적인 약속 위주로 서약서를 준비하다보니 기업에서 진행하는 MOU체결 같은 '계약' 분위기가 강해진다. 나는 합독형을 택했고, 혼인 서약 조항은 각자 열개 씩 뽑았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서약서 속의 내용으로 다툼이 발생할 때 해결하기가 쉽다. 예컨데 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를 주저한다면 아내 입장에서 '평생 쓰레기 버려준다매' 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런 혼인 서약에는 정해진 '형식'은 없다. 내가 만나는 고객들은 남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여를 하다보니 '정해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아니다. 정해진 것은 없다. 하고싶은대로 해도 무방하다. 남들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물론 '그래도 이렇게 하는게 좋지 않겠느냐' 는 오지라퍼들이 있기 마련이다.  간섭이나 참견에는 ‘요즘은 이렇게 부부의 개성에 맞게 결혼식을 준비하니 걱정마시고 지켜봐 달라고’ 설득하기도 좋다. 내 부모님도 그랬지만 많은 부모님께서 경험이 없어 걱정하신다. 하지만 식이 끝난 뒤에는 만족해 한다. 어떤분은 '나도 이렇게 할껄'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적당한 길잡이가 있다면 좌충우돌을 줄일 수 있으니, 내 결혼식의 혼인서약서의일부를 발췌해 소개해본다.

 

 

 

 

 

화촉점화와 입장 그리고 혼인서약까지 소개는 여기까지다. 다음 포스팅에는 예물 교환과 성혼 선언 그리고 덕담에 대해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