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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이길 원한다면

 

"속 터져서 그냥 제가 하고 말아요"

 

딸둥이 키우는 아빠다 보니 육아 커뮤니티를 둘러보기를 즐기기도 한다, 육아를 직접 하고 있지 않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봤자 공감대가 만들어지지도 않고 고립감을 느낄 때도 있어, 같은 상황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남자이기에 남자 입장에서 생경한 게시물을 볼 때가 잦다. 그중에서 자주 올라오는 주제는 '남편의 육아 참여'에 대한 글이다. 보통 남편의 육아 참여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힘들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보통 답답해서 이제는 포기했다는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임하길 원한다면

남편들이 이기적이라서 또는 센스가 없어서 정말 육아에 소극적이거나 못하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보통의 한국 남성은 '자신의 과업'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웬만하면 책임을 다한다. 책임감의 중요성에 대해 어려서부터 훈련받고, 군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덕목을 몸으로 깨우친다. 

 

군대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인데, 군대 행정반에 가면 철제로 만든 큰 캐비닛이 있기 마련이다. 이 캐비닛에는 관리 책임자 '정 아무개', '부 아무개'라고 써 붙어 있는데, 말 그대로 캐비닛 안에 있는 내용물을 관리할 주된 책임자와 보조 책임자를 표기한 것이다. 사무실에 주 책임자가 있는 상황이면 부 책임자는 그 캐비닛과 관련된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자신이 책임 1순위가 아니니 나설 필요도 없고 나서서도 안 된다고 여긴다. 나서가 되면 그것은 월권이나 마찬가지이니. '일 또는 과업'에 대한 남성의 생각 메커니즘은 바로 이렇다 현재 내 눈앞에 벌어지는 이 일이 '나의 책임'인 것인가 아닌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나의 책임이 아닌 일에 대해서 남성은 어떻게 행동할까? 모르긴 몰라도 보통 '남일 보듯이' 한다. 나서지 않는 것이다.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남편이 경제적 주체 임무를 맡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맡는 구조가 되었다면, 남편의 머릿속에서 '육아와 가사'는 1순위 업무가 아니며 자신이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일도 아니게 된다. 그 일에 대한 책임자는 '아내'이니 나설 필요 없고 나서서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법 많은 가정의 아들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 '남자가 밖에서 경제 활동을 했으니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내의 책임이다'라고 여기는 암묵적 환경 말이다. 회사 일을 했으니 '내 할 역할을 다 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편이 악인이거나, 이기적이어서 육아나 가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자기 임무가 아니라고 여기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여기 성장하는 조직의 리더와 그렇지 못한 리더가 있다. 전자의 리더는 업무가 발생하면 실무진에게 나눠준다. 대략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실무자가 본인의 능력 한도 내에서 풀어낼 수 있도록 재량권을 준다. 여기서 분명히 하는 건 '그것에 너의 임무'라며 실무에 대한 책임을 주지하는 것이다. (물론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말을 빼먹지 않는다.) 실무자는 맡은 임무를 진행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점점 일을 해내기 시작한다. 리더는 이런 성장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후자의 리더도 실무진에게 일을 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넘어 아주 구체적인 방법까지 강요한다. 그 절차를 벗어나거나,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때는 심한 간섭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일정 수준의 일을 주지 않게도 한다 '답답해서 내가 하고 만다'는 말을 곁들이며. 

 

전자의 리더는 실무진이 능숙해지는 만큼 시간을 벌게 되며, 다른 일을 더 챙길 수 있게 된다. 비즈니스를 더 벌릴 수 있게도 된다. 후자의 리더는 자신이 실무에 관여하는 정도가 높아 다른 일을 챙기기는커녕 팀 운영에도 급급하다. 전자의 리더 밑에서는 사람이 성정하고 후자의 리더 밑에서는 성장하지 못한다. 

 

나이가 든 아버지는 은퇴하고 고향에서 조그 많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 논농사 철에는 일손이 필요하다 보니 도와드리곤 하는데, 잔소리가 심하시다. 의자에 앉는 방법까지 참견하기도 한다. 답답함이 커지면 '어이구 내가 하고 만다'라고 하시기도 한다. 그런데 어쩌리오 나는 그 일을 그날 처음 해봤는데 잘할 수 있을 리가. 아버지가 본인이 하신다 해버리시니 나는 도울 여지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 아버지는 대부분의 일을 혼자 다 하신다. 그러고는 힘들다고 하신다. 본인이 일을 끌어안고 남에게 임무를 맡기지 않는 건 생각하지 않으신 채.

 

 

육아도 가사도 똑같다.

 

엄마들이 종종 내 뱉는 ' 속 터져서 그냥 내가 한다'는 생각이 정말이라면, 평생 본인이 육아와 가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노오오오옾다'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육아와 가사에 능숙해질 수도 없고 자신의 '임무'도 아닌 셈이니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게 된다. 능동적으로 하려 했다간 욕만 들을 수 있을 테니. 그러니 속 터지는 엄마들이 어 자신이 자유를 얻고 싶다면, 최소한의 휴식을 취하려면, 인생을 함께 헤쳐나갈 동료를 길러내고 싶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애가 트림을 하든 못하든, 똥으로 칠갑을 하든 말든, 목욕을 시키든 못하든  일단 일을 떼어 줘야 한다. 

 

남편이 퇴근이 늦는다? 그래도 줘야 한다. 아내인 본인도 종일 육아 업무를 했으니 퇴근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남편이 밖에서 돈 버느라 고생하니 배려하는 셈으로 내가 하지 뭐, 그러면 알아서 나 도와주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글쎄, 십중팔구는 남편은 '나는 내 몫을 하고 있고 아내가 알아서 자기 몫을 하고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원한다면, 남편의 머릿속에 '육아 책임자 정'이라고 써주길 권한다. 

 

 

요약

육아 임무를 주고, 책임을 주지시키고, 재량권을 주고, 간섭하지 말라. 그럼 성장할 것이다.(물론 중간 중간 잘 하는지 점검은 해야한다.)

 

 

 

지난 수요일 해먹인 애들용 초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