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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혼식에는 주례도, 사회자도 없었다. 아니 신랑이 사회자였다. 1

주례없는 결혼식을 신랑이 직접 사회까지 봤다.

 

“안녕하세요. 오늘 신랑 유현채 입니다. 신랑이 왜 저기에 서 있지? 라고

생각하실 분들 계실 겁니다. 실은 제가 오늘 신랑이면서 사회자입니다.”

 

 

 

 

내 결혼식은 2016년 5월 부부의 날 이었다. 일곱 살 연하의 여친과 손을 잡고  유부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 결혼식은 주례가 없었다. 요즘은 90% 정도가 주례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있지만 2016년만 해도 60% 정도였다. 그리고 사회자도 없었다. 전체 하객은 100명 남짓으로 ‘스몰웨딩’을 목표로 준비했다. 웨딩 디렉터나 플래너 없이 순도 100% 직접 준비한 셀프 웨딩이기도 했다. 최대한 간소화하되 허례허식을 하지 않으면서 나와 아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했다. 양가 부모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은 흔한 일이 되었지만, 사회자가 없는 결혼식은 드물것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사회자가 따로 있지 않았고 내가 사회자이자 신랑이었다. ‘사회는 누가 하냐’라며 물으시던 장모님에게 아내가 ‘오빠가 할거예요’라며 답해 버린 게 시작이었다. 신랑이 사회를 보는 모습이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못할 거 없지’라는 생각에 동의해 버렸다. 하지만 막상 기획을 하려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객의 행사나 결혼식 사회를 맡기만 했봤지, 내 결혼식은 처음이었으니...

 

나는 신랑이면서 사회자였다

 

지금까지 남의 결혼식을 찾아가면서 세운 기준은 '신랑 신부가 돋보일 것'과 '얼굴 모르는 사람은 하객으로 초청하지 않는다'였다. 전자는 혼주가 원하는대로 맞추다보니 신랑 신부는 들러리가 되버리는 결혼식 문화 때문이었고, 혼주 하객이 많다보니 얼굴도 모르는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싫어서였다.

 

그래서 내 결혼식의 하객은 아내와 나의 가까운 지인과 가족으로만 꾸려졌다. 부모님 하객은 본식 보름 전에 별도로 잔치를 했다. 그렇게 보수적인 아버지가 원하던 바를 해결해 드렸고 내 결혼식을 '내 마음대로' 준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내 결혼식은 크게 네 가지 기준을 지키려 했다. 가까운 지인과 식구만 모이는 자리니 그들이 한 번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순서를 넣고 싶었다. 내가 원했던 분위기와 아내가 하고 싶어한 순서도 넣으려 했고, 양가 부모님을 고려한 식순도 넣었다. 정리해보니 다음과 같더라. 

 

 

(1) 둘이서 하나씩 준비한 결과가 나올 것

-> 셀프웨딩으로 모든 걸 하나하나 고르고 만들어 준비했다.(리셉션 세팅이라든지)

 

(2) 가족과 내빈이 함께 하는 순서가 있을 것

-> 화촉점화는 양가 부모님 모두, 예물교환할 때 링베어러는 쌍둥이 처남이, 성혼선언은 내빈이 합동으로 선포, 저와 아내의 지인이 축사와 축가를 맡아줬다.

 

(3)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 중요한 기본 순서는 빠지지 않고 진행했다(혼인서약, 성혼선언)

 

(4) 스타워즈 테마가 들어갈 것

-> 입장 곡, 행진곡 모두 스타워즈 OST사용, 행진할 때 친구들의 광선검 예도를 맡았다.

 

식순으로 구성하면 이렇다.

 

 

신랑겸 사회자

 

 

'안녕하세요. 오늘 신랑이면서 사회자입니다'

말하기를 직업으로 삼아 짬밥을 먹은지도 제법 되다보니 별의별 행사를 다 해봤다. 공연식 결혼식에 토크쇼 결혼식 까지 결혼식도 특이하다 싶은 건 다 해봤지만, 신랑이면서 사회자인 결혼식은 처음이었다. 첫 경험에는 언제나 공포가 따른다. 게다가 내 결혼식이니 긴장은 더했다. 그렇가고 결혼식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도망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침을 꿀꺽 삼키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신랑 유현채 입니다. 신랑이 왜 저기에 서 있나? 고 생각하실 분들 계실 겁니다. 실은 제가 오늘 신랑이면서 사회자입니다. 오늘 저희 결혼식은 스스로 준비하고 가족과 내빈들이 함께 해주시는 의미에서 준비했습니다. 주례를 모시지 않고 저와 가족 중심으로 진행되는 결혼식 끝까지 함께 해주시고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진행하기 위해 휴대폰은 꼭 진동으로 바꿔주시길 부탁 드리며. 지금부터 예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박수를 받으며 오프닝 멘트를 마치고 다음 순서는 양가 부모님의 입장 순서였다. 신부 아버지는 신부와 함께 입장하지만, 신랑 아버지는 앉아 있는 일이 보통이다. 나는 이왕이면 부모님 모두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서 화촉점화를 보통과 다른 방법으로 기획했다. 

 

양가 부모님 모두 입장해 준비된 네 개의 초에 점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요즘에는 이렇게 하는 것도 흔해졌더라) 내 부모님과 아내 부모님이 입장해 화촉점화를 마친 뒤에 나와 입장했다.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하는 방식은 미리 장인어른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신부와 함께 입장해 신랑에게 신부를 인도하는 걸 신부 아버지의 '의무'로 여기는 어른들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물어보는게 좋다. 내 장인어른은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나와 아내가 입장하는 순서는 기획단계에서 난관 중 하나였다. 내가 개식사를 하고 양가 부모님 입장 진행을 한 다음에 ‘제가 입장하겠습니다’며 사회자석에서 입장하는 자리로 이동하면 번잡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