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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_대화

스피치-나는 가지가 싫었다. (가지와 설득이야기)

설득을 하려거든 먼저 상대를 이해해야지.

 

나는 초등학생 입맛이었다. 나물 먹기를 꺼렸고 어른이 된 지금도 시금치무침과는 내외한다. 코 흘리던 시절에는 질색하던 반찬이 있었다. 길고 곧게 뻗은, 매끄러운 광택이 이상스럽게 느껴진 야채. 가지였다. 

 

아버지가 즐겨 드셔서 그런지 몰라도 어머니는 자주 가지를 상에 올리곤 하셨다. 이 가지라는 이름의 야채는 채소인데 입맛을 떨궈버리는 재주가 있었다. 피터 잭슨 영화에나 나올법한 흐물거리고 축축한, 생기 없는 모습. 체액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생겨먹은 가지무침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녀석이었다. 

 

서른하고도 절반을 넘긴 때였다. 모처럼 본가를 찾았는데, 마침 어머니가 자랑하듯이 음식을 내주셨다. 처음에는 가지인 줄 몰랐다. 칼집을 내어 부추를 넣은 오이소박이처럼 칼집을 내고 다진 소고기로 채운 가지 요리였다. 어떻게 조리하셨는지 겉은 구워졌고 속은 촉촉했다. 지금까지 알던 가지와는 달랐다. 질색하는 생김새가 아니다 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하나를 집에 들어 베어 물었다. 촉촉한 가지와 고소한 소고기가 어우러졌다. '어 맛있다'라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한 접시를 해치웠다. 놀란 눈으로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엄마 가지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라고

 

 

당시 먹었던 가지 찜

 

 

 

그 뒤로 가지의 참맛을 알게 되었고, 가지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게 되었다. 양꼬치를 먹으면 꼭 가지 탕수를 시켜 먹을 정도로 가지는 최애 야채가 되었다. 심지어 가지 무침이나 조림도 잘 먹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가지의 본모습을 알게 되었다.

 

설득도 그렇다. 사람들은 설득이 어렵다고 한다. (설득은 애초에 어렵다는 건 나중에 다루겠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성별과 나이 성격과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대중적인 가치라도 그것이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분명 보편적인 가치와는 반대 선상에 서있는 사람이 있다. 내 기준에서 합리적인 논리가 상대방 입장에선 비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논리는 그대로인데 비유와 근거를 바꾸거나 주로 표현하는 단어를 바꾸면 설득이 되기도 한다. 가치를 다르고 소화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가지를 잘 먹게 된 것처럼, 설득을 잘 하려면 상대방의 가치관이나 선호하는 방식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잡곡밥 싫어하는 이에게 건강에 좋다고 아무리 떠든들 상대방이 맛있게 먹을까? 상대방 방식과 가치관을 탐색하기는 성공적인 설득의 첫 번째 관문이다. 

 

내 식대로 먹이기보다, 상대방이 좋아할 방법으로 조리해 먹이기,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성취감도 높아진다. 상대를 더 잘 이해한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사람들이 내 말에 설득이 안 된다면, 내 식대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주는 가지 요리를 해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