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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혼식에는 주례도, 사회자도 없었다. 아니 신랑이 사회자였다. 뒷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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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강요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소모적인 결혼식에 익숙해 있다. 신혼부부를 빨리 생산(?)해 내야 타산이 맞는 예식장과 따지고 보면 불필요한 항목을 강요하는 풍습을 ‘당연’한 것으로 알기도 한다. 그런 흐름에 휩쓸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저마다 모습과 취향이 다른다. 다른 모습의 사람이 만나 맺어지는 순간을 다 똑같이 할 필요는 없고,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대로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과 결과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결혼식은 그랬다. 간소하길 원했고, 넉넉한 시간 동안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었으면 했다. 하객이 대충 보고 축의금 내고 식사하고 가버리는 걸 원치도 않았다. 어떤 형태로든 초대한 소중한 지인과 가족이 결혼식을 빛내주길 원했다. 여기에 나와 아내의 문화적 취향이 드러났으면 했다.

 

결혼식에 '원래, 본래, 절대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다. 서로가 원하는 형태로 한들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복해줄 것이다. 그러니 세간의 눈을 의식해 하고 싶은 걸 마다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즐길 결혼식을 준비하고 치뤘으면 한다. 어렵지 않다.

 

 

결혼식장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내 결혼식을 위한 적절한 장소를 정하기 위해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다. 입지와 주차, 음식 등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하면서 다른 결혼식 시간과 겹치지 않거나 가까이 붙어 있지 않으면서도 기획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중요하게 고려한 점 중 하나는 '식당' 이었다. 독자들 중에서도 결혼식은 적당히만 보고 서둘러 식당먼저 찾아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 결혼식의 하객은 나와 아내의 중요한 지인들만 초대했는데, 그들이 우리 결혼식에 참여하지 않고 바로 식사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결혼식에 참여를 하고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여기에 주인공인 신랑 신부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인테리어를 원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어디를 보나 신랑 신부만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예식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보통의 예식장은 고객 회전율을 높이는데 우선 순위를 두고 설계하기 마련이니 내 기준이 통할리가... 아무튼 백방을 돌아다니며 찾던 와중 서울 보성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을 알게 되었다. 유서 깊은 학교의 기념관이면서 콘서트홀 이었는데. 공연장이다보니 주인공에게 집중하기 용이하도록 조명이 배치되어 있었고, 계단식 부채꼴 구조는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도 정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보성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 왼쪽에 신랑과 동시에 사회자인 내가 서 있다.

 

 

이곳은 콘서트홀 즉, 공연장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지는 곳이 무대 중앙이다.

 

무엇보다 결혼식을 꼭 본 뒤에만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식당은 학생 식당을 이용했는데, 메인 홀과 약 1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먼저 먹으면 예식을 볼 수 없는 환경인 셈이었다. 어떤 손님은 이런 환경을 탓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개식사를 하며 양해를 구했다. '귀하게 모신 손님이니 저희 결혼식에 함께 해주시고 식사를 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로 말이다. 

 

 

 

결혼식 음악 선곡은 재즈와 스타워즈 OST

보성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은 콘서트홀 이기 때문에 음악이 연주되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그래서 결혼식에 쓰일 음악은 녹음된 노래 보다는 즉석에서 연주되는 생음악으로 준비했다. 이곳은 따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서 클래식 보다는 프리 재즈를 선택했다. 3중주 팀을 섭외했는데, 4중주에 보컬까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오른쪽에 재즈팀이 준비를 하고 있다.

 

음악은 전체적으로 재즈 연주팀의 프리 재즈로 진행했지만, 나와 아내의 입장 그리고, 행진곡은 준비된 음악을 사용했다. 어떤 형태로든 스타워즈가 들어갔으면 했던 내 마음을 실현하려 했다.

 

스타워즈 오프닝 테마

 

 

스타워즈 엔딩 테마

 

 

그 바람 그대로 스타워즈 오프닝 테마와 엔딩 테마를 골랐다. 스타워즈의 상징과도 같은 음악이고, 영화의 시작을 여는 음악이니 입장곡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행진곡은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에서 엔딩 타이틀로 사용된 곡을 골랐다. 영화 속에서 승전보를 알리는 곡이기도 하고 영화 마무리를 담당하는 곡이기에 행진과 잘 맞는다고 판단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추억 영상은 이렇게 만들었다.

지난 포스팅 2편에서 나와 아내가 입장하기 위해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고, 영상으로 해결했음을 밝혔는데, 영상은 별도로 업체에 의뢰 하지 않고 직접 제작했다. 나와 아내의 어린 시절 모습부터 결혼 직전까지의 사진을 추려내 약 1~2분 정도로 구성했다.

 

아내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청첩장과 영상의 첫머리

 

 

영상 제작은 어렵지 않다. 요새는 프로그램이 잘 나와 있으니사진과 배경 음악만 잘 고르면 된다다. 특히 맥킨토시 사용자는 영상 만드는데 한 시간이 채 들지 않고 퀄리티도 만족할 만하다. 영상 제작 툴은 맥 OSX의 사진 앱(구 아이포토)을 사용했다. 사진 고르고 탬플릿 고르고 음악 고르고 사진이 얹혀진 것을 확인하고 내보내기 버튼만 누르면 간단히 끝난다.

 

결혼식 사진은 패키지를 선택할 필요 없다.

결혼식장을 고르기 만큼 사진에 신경을 썼다. 그렇다고 으리으리한 사진을 찍으려고 한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지를 고민했다. 예산과 시간을 고려해서 말이다. 보통 결혼사진은 스튜디오 촬영과 야외 스냅 촬영, 당일 스케치 촬영 세 가지가 있다. 요새는 스튜디오 촬영과 야외 스냅을 병행하기도 한다. 나는 스튜디오를 생략하고, 야외 스냅과 당일 스냅만 진행했다.

 

결혼식 준비한다고 찍는 수백컷의 사진은 정작 결혼식에 다 쓰지 못한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찍는 스튜디오, 스냅 사진 등은 다 합하면 약 1,000컷에 달할 정도로 양이 상당하다. 그렇지만 그 많은 사진을 결혼식에 다 쓰지는 못한다. 심지어 엘범으로 만들어 한번 펼쳐보고 십수년 동안 펼쳐보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사진에 관해 문외한이었다면 모를까, 사진과 카메라 밥을 10년 넘게 먹었고, 웨딩 비즈니스도 솔찬히 한 입장에서 이렇게 무리(?)해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정한 기준은 '결혼식에 쓸 사진 위주로 최소화 해서 찍는다'였다. 

 

스타워즈 테마의 결혼사진. 날아가는 다스베이더가 바로 나다.

 

또 다른 이유는 시간이었다. 나와 아내가 결혼준비를 총 다섯 달 동안 했는데 야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3~4월뿐이었다. 결과물이 보정되는 시간을 고려하면 3월 하순이 유일했다. 이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그냥 많은 사진을 찍기보다는 필요한 사진을 정하고 그 사진만 찍어야 했다. 이렇게 일을 하려면 '스토리보드'는 필수다. 스토리 보드와 예제 사진을 참고해 찍으면 촬영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나는 콘텐츠 일을 오래 해왔고 아내는 디자이너 출신이니 스토리보드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스토리보드를 만들고 촬영 계획을 세운대로라면 반나절 정도면 결혼 사진 찍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나와 아내의 결혼사진이 나왔다. 스타워즈 테마 사진과 쥬라기 공원 테마의 사진이 있었고 결혼식 하면 떠오르는 오글거리는 사진도 있었다. 모두 반나절, 정확히 3~4간 정도에 촬영이 끝났다. 사진 작가분은 스토리보드를 따라가며 우리가 원하는 사진을 찍었고, 작가분이 원하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나의 결혼 스냅사진은 버릴 것 없이 모두 만족할 수 있었다. 비용 절약은 덤이었다.

 

 

우리는 신부 대기실을 쓰지 않기로 했다. 

신랑은 손님맞이를 하는데 신부는 왜 대기실에서 기다릴까? 이점에 대해 생각해본적 있는가? 신랑과 신부 둘 다 주인공인데 왜 신부만 방에 앉아 기다리고, 신랑은 손님을 맞이할까? 손님의 절반은 신랑 측 나머지 절반은 신부 측일 텐데 말이다. 아마도 오래전 풍습에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신랑집에 신부가 들어가는 것이 결혼이었으니까.

 

제 처가댁은 남녀의 역할이 5:5로 균등한 편이다. 장모님이 설거지를 하면 장인 어른은 상을 치우며 과일을 깎는다. 여자가 집안일 한다고 남자가 놀고 있는 가정이 아닌 곳에서 아내는 자랐고 그런 아내는 신부대기실에 신부가 있어야 하는 상황을 못마땅해 했다. 아내는 “나도 로비에서 손님맞이 할 거야” 라고 했다. 똑같은 주인공인데 팔려가는 것처럼 방에서 기다리고 구경거리가 되기는 싫다는 게 아내의 의견이었고 나도 좋다고 생각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신부대기실을 이용하지 않았고 똑같이 손님맞이를 했다. 아내는 손님 맞이를 편히 하려고 풍성한 드레스가 아닌 활동하기 편리한(헬퍼가 없어도 되는) 드레스를 입었다.

 

 

남들처럼 결혼식을 치루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 결혼식이 ‘남들처럼’ 지나가길 원치 않았기에 치열히 고민했고 아내의 도움으로 이룰 수 있었다. 아내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렇게 좋은 추억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과 하객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 치룬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종종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식 기획 잘했다고’ 

 

결혼식을 기획하고 진행하기까지 가장 걱정이 많았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는 공직에 계셨고 연세가 있다 보니 가족예식(주례없는결혼식)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렇게 해도 되는가에 대한 걱정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믿어주셨다. 그리고 성과도 었었다. 참석해주신 하객의 칭찬 말이다. 혼주 입장에서 이만한 성과는 없었을 테니. 

 

여러분도 그랬으면 한다. 누구나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고 두고두고 회자하는 그런 추억을 남겼으면 한다. 공장 같은 결혼식장에서 10분마다 신혼부부가 생산(?)되는 문화를 지양했으면 한다. 붕어빵 같은 방식은 초중고 주입식 교육으로 충분하다.

 

 

부디 결혼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행복한 결혼식을 올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