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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정리-아줌마 차 빼라고!

 

'화를 다스리는 마법의 주문'

 

며칠 전이었다. 늑장 부린 아이들 아침 등원을 마무리하고 서둘러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편도 2차선, 한 쪽은 좌회전 차로 한 차로는 우회전 차로로 구성된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기 우회전이 보인다. 저기만 넘어가면...'라는 생각으로...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라 누가 그랬던가, 마침 검은색 벤츠가 비상등을 켜고 정차 중이었다. 그 차는 우회전 차로를 떡 하니 가로막고 서넛의 사람을 태웠다.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화가 치밀었다. 경음기를 세게 누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화를 난들 상대는 알지 못할 것이고 욕은 고스란히 내 귀로 들어올 테니까. 그렇게 나는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그럴 수 있지' 

 

과거의 우리는 보편적 상식이란 말과, 법에도 쓰여있는 '조리'에 따라 세상의 이치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보통 '이러이러 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내린 채. 아마도 보편성으로 행동과 관계를 정의 내리기는 2010년까지였을 것이다. SNS의 폭발적인 발달로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다른지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 세상에서 '보통은 이러하니까'라며 상대를 재단하거나 비난하는 건 결국 내 손해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20%는 또라이다'는 말처럼 보통 그렇다기보다는 다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예컨대 우회전 차로에서 정차하고 있던 사람들은 '나의 편익을 위해 타인에게 불편을 끼쳐도 된다' 정도의 생각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 정도 가지고 뭘' 이랄까? 그런 사람에게 우회전 차로에서의 정차 행위를 비난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들의 상식에는 '이 정도는 이해해 주는 거잖아?'일지 모르니까. 

 

그래서인지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권한다. 괜히 상대의 행동을 내 기준으로만 판단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라 말이다. 

 

그렇다.

 

그럴 수 있지.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