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부모님은 60대를 넘어 70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가 으레 그렇듯이 여가보다는 소처럼 일하기를 즐기셨지요. 오죽하면 제주도 조차 가보신 적이 없으니 말할 것도 없죠. 여행이나 중형차를 사치라고 여기시던 부모님과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몇 주 동안 유럽을 돌아다니며 제가 알던 부모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경한 모습을 보여 주셔서 당황스러웠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왔다던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그 경험을 재료삼아 부모님과 여행할 때 고려하면 좋은 점들을 정리해 봅니다.
첫째. 우리나라의 여름은 덥고 습하지요. 도 닦는 사람들도 짜증낼법한 날씨입니다. 반면에 여름의 유럽은 날씨가 좋은 편이죠. 당연히 더울 계절에 선선한 곳으로만 모셔도, 부모님은 기뻐하십니다.
둘째. 그 대신 선글라스는 꼭 필요해요. 체코만 해도 햇살의 힘이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지요. 오스트리아로 가면 눈이 부셔서 풍경을 즐기기 불편합니다. 할슈타트의 멋진 모습을 제대로 못 볼 수 있죠. 그렇게 눈부신 곳에서 부모님을 사진으로 담고나면 인상을 찌푸리고 계실 수 있어요. 그러니 선글라스는 챙겨가면 좋겠지요?
셋째. 제 어머니는 암 환자입니다. 30년 정도 암과 친구하고 계셔요. 암 덕분에 보통 사람보다 체력이 약하십니다. 매일 드셔야 하는 항암제는 당연하죠. 이런 어머니에게 유럽의 분위기를 즐겨보라며 시내 외곽에 있는 숙소를 잡으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노년기에 들어가면 참을성이 부족해져요. 그리고 자신만 생각하게 되죠. 이건 이기적인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겁니다. 생존본능과 같은 거라서요. 그러니 최소 4성급 호텔에 모시는게 낫습니다. 많이 걷는 것도 삼가하고요.
넷째. 유럽에서 슈니첼 같은 걸 대접하는 건 주의해야 해요. 돈까스랑 비슷한 음식이지만, 훨씬 짜고 기름지니까요. 나이드신 부모님은 현지 음식에 금새 질릴 수 있습니다. 사흘만 되어도 김치찌개를 찾으실 수 있어요. 우리도 하루 세끼를 햄버거만으로 떼우기가 어렵듯이요. 나이드신 부모님은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게 낫습니다. 그러니 한국 음식점을 알아두기가 낫겠지요.
다섯째.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프라하 광장? 대륙의 기상을 느껴보시라며 넓은 미술관이나 큰 광장을 찾기 전에도 부모님의 체력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람의 무릎은 1회용이거든요. 재생되지 않는 연골을 평생 씁니다. 부모님은 그 연골이 일찌감치 닳았을 수 있어요.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걸 보여주고 싶은 내 욕심인 건지, 부모님이 진짜 원하는 건지...
여섯째. 자애로운 어머니의 미간이 굳어지고, 아버지가 툴툴거리기 시작한다면 망설이기 보다 숙소로 돌아오세요. 오래 기다려서 들어간 곳에서 '별거 없고만?'과 같은 짜증 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면 부모님의 몸 상태에 일정을 맞추기가 낫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알게된 사실이 있어요. 나열한 여섯가지는 부모님을 모실때만 고려해야 하는 점들이 아니라는 걸 말이죠. 실은 저는 거의 매일, 매 주마다 저 점들을 고려하고 살고 있습니다.
바로 어린 아이들을 키울때 하는 고민이거든요. 아이들이랑 외출이라도 하려면, 어디 놀러라도 가려면 저 여섯가지를 고려하게 됩니다. 아이들에 맞춰 일정을 짜고, 아이들이 지치는 기색이라도 보이면 서둘러 숙소로 향하죠. 아이들 입맛은 어른과 다르니 아이들 입맛에 맞춰 음식점을 찾고요.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은 우리들을 키우며 이미 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모님을 위해 내 수고 쯤이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모님도 그 고생으로 우리를 키우셨으니까요.
*위 글은 '입덕할래님'이 부모님과의 여행에서 깨닳은 것 이라는 글을 토대로, 제 경험을 더해 각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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