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앞에!!!"
급하게 핸들을 트는 순간 아내가 소리쳤습니다. 깜짝 놀라 앞을 보니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달려드는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큰 소리와 함께 자전거와 부딪혔고 운전자는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차를 급하게 멈추고 차에서 내려 운전자를 살폈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워했고 저는 황급히 119를 눌렀습니다.
시작은 그날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아이들 장난감을 당근 거래로 산 아내가, 구성품을 다 받지 못했다며 외출하는 길에 들러 받아 가자고 했습니다. 판매자가 구성품을 빼먹었는데, 왜 우리가 가서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따지기보다 말없이 따랐습니다. 속은 평온치 못했지요. '왜 탐탁지 않은 거래 과정 때문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거지?'로 시작 히니 쌓아두었던 못마땅한 일들이 마음을 채웠습니다. 감정을 잘 읽는 아내는 제 태도를 보며 왜 그러느냐며 물었고 끝까지 감추지 못한 저는 말다툼을 하게 되었지요.
정신에 여유가 있었다면, 말다툼을 슬기롭게 해소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성과 감정이 뒤죽박죽되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던 저는 급기야 화를 터트리게 됩니다. 좁은 공간에서 소리를 치며 운전을 했지요. 당근 판매자가 있는 아파트 입구에서 다다른 저는 앞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핸들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감정의 격류에 허우적대다가 타인에게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또다시 실수를 저질렀다는 자책감,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죄송함에 말이지요. 그 마음 그대로 피해자 구제에 최선을 다해, 피해자가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 우연히 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은행 투자 상품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고객을 달래는 과정이었죠. 주인공 차승원 씨는 그를 사무실로 안내하며 부하 직원에게 ‘뜨거운 물’을 준비해달라고 합니다. 그는 김이 오락거리는 물을 고객에게 건네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뜨거운 물에 놀란 고객은 입바람을 불며 마십니다. 바람을 불며 뜨거운 물을 식히듯이 자신의 화에서 한숨 돌리며 말이죠. 그는 이윽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며, '아내의 당근 거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내 생각에만 집중하지 않았더라면, 별것 아닌 일이 되었겠구나' 싶더군요.
사적 거래에서는 별의별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걸 꼭 제 관점대로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중고거래는 '이러저러하게 해라'라며 아내에게 말해준 적도 없고 말이죠. 실생활에서도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이나 댓글을 쓸 때 감정이 크면 클수록 분란을 일으킬 글을 쓰게 됩니다. 물 한잔 마시며 되짚어본 뒤에는 다림질 된 말을 뱉게도 되죠. ‘감정의 격류 앞에서는 감정 다스리기를 먼저 해야 한다.’는 걸 다시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었지요.
그리고...
그 사고가 있던 그날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신세를 지던 아이들이 퇴원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처음으로 집에 데려오는 날이었죠. 이 모든 걸 한낱 제 감정 때문에 망쳤기 때문에 저는 이날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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