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마누라'
아내가 문서 한 장을 보내왔다. 휴대폰 카메라로 인플루언서처럼 찍는 법이라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잘 찍는 법을 안내한 PDF 파일이었다. 내용은 피사체의 발끝을 사진 프레임 하든에 맞춰 찍으면 다리가 길어 보인다는 것이 골자였다. 아내가 출근하기 전에 대충 찍어준 사진이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평소 같으면 알았다며 공부해 본다며 했을 텐데, 날씨가 비가 내리는 탓인지 참지 못하고 일장 연설을 해버렸다. 발끝을 프레임 하단에 맞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광각렌즈의 원근감을 이용해서 아래에서 위로 찍으면 되는 원리다. 그리고 예제 사진 모두 탁 트인 공간에서 사광으로 촬영했으니 더 화사하고 예뻐 보이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도 그렇게 찍어준다며 내 카메라(휴대폰이 아니다)로 찍은 사진을 줬다.
아내는 '단순히 내 휴대폰으로 예쁘게 찍어 달라는 건데, 당신 하고 싶은 말만 한다'라며 푸념을 했다. 당신 할 말만 쏟아낼 꺼면 뭐 하러 같이 나랑 사냐, 당신 말 들어주는 사람들이랑 살지'라고 했다.
아내 말이 옳았다. 아내는 아내의 기준과 아내의 휴대폰으로 아내의 감성에 맞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구였고, 나는 그것은 적절치 못한 방향이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방향을 강요했다.(휴대폰 따위 같은 걸로 찍지 말고, 제대로 찍어야 한다는 일종의 이 세계의 정신이랄까).
아내와의 대화로 대중적인 요구에 접근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요리를 잘하는 꿀팁'과 '요리사로 가는 길' 두 가지의 책을 준다면 분명 전자를 고를 것이다. 대중 대부분은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당장 눈앞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요리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은 알아서 그 길을 선택하지 '요리 잘하는 꿀팁'같은 건 찾아보지 않는다. 꿑팁을 찾아본 대중 중에 일부는 요리에 재미를 느껴 더 깊은 공부를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교육 콘텐츠나 방법론의 구조는 '흥미 유발->기초능력 습득->심화 능력 습득->전문가 능력 배양' 순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우리 곁에 유명하고 잘 된 사례가 있지 않는가? 바로 대중적인 요리 기법의 선도자인 '백종원 씨'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을 등한시하고, 무슨 고대 철학자처럼, '요리란 무엇인가'부터 떠들고 있었던 셈이다. 스스로부터가 오랜 시간을 뜰 여 쌓아 올린 것인데 그 끝만 강조하고 있으니 잘 팔릴 리가.
이렇게 오늘은 아내와의 대화로, 내 강의 콘텐츠를 재 정비할 핵심을 짚은 날이 되었다.
고맙다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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