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적에는 리모컨은커녕 빙글빙글 도는 손잡이(그때는 로터리식이라고 했다.)를 돌려 TV 채널을 골랐다. 그 TV로 봤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은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이야 거짓으로 확인되었지만, 비둘기 수십 마리가 통구이가 되었다는 설이 난무했던 성화 점화식을 생중계로 봤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우리나라에 큰 행사가 또 열렸다. 서울에서 치러진 올림픽과는 달리 행사는 직접 가볼 수 있었다. 1993년 대전 세계 박람회, 다시 말해 '93 대전 엑스포'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전에는 보고 즐길 것이 없다. 오죽하면 대전 시장도 ‘노후를 보내기 좋은 도시’라고 했을 정도라며 공언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 만큼 대전에는 별일도 없고 놀 곳도 없다.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기상재난도 강림을 거부하는 곳이 대전이다. 그런 대전에서 TV로만 보던 국제 행사가 열렸으니 기억에 남지 아니할 수 없으리라.
대전 엑스포는 전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 손님도 오는 행사인 만큼, 대전 시민이라면 꼭 가봐야 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찾은 행사장은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난생처음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봤고 영화에서나 들리던 영어가 곳곳에서 들렸다. 세계 박람회에 걸맞은 증험이었다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미래과학관이란 간판이 걸렸던 전시관이 떠오른다. 그때는 전시관에 들어가려면 긴 줄을 서야 했다. 행사가 한창이었던 9월에 말이었다. 요즘에야 손바닥만 한 선풍기로 더위와 싸울 수 있지만, 전단지로 부채질하기가 고작이었던 그때는 줄서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갈색 피라미드처럼 생긴 미래과학관의 위용은 긴줄을 참게 했다.
당시 내 또래 아이들에게 유행하던 장난감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넓이의 용수철이었는데 펼치지 않으면 한 뼘 정도 되는 두께였다. 용수철 양 끝을 잡고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한 뒤 시소 타듯이 균형을 바꿔보면 포개진 용수철 마디가 좌우로 움직였다. 특별한 이름보다는 장난감 스프링이라거나 무지개 스프링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을 박람회에 갖고 갔었다.
줄을 선 지 한 시간 정도 지나니 과학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입구는 평지보다 아래에 있었고 촘촘한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더위와 싸우며 줄 서 있으려니 나는 좀이 쑤셨고 이내 장난기가 발동했다. 서 있던 계단에서 장난감 스프링을 튕겨보면 애벌레처럼 계단을 타고 내려갈 것만 같았다. 망설여지면 하지 말라며 조언하는 세상이지만, 나는 그런 말에 거스르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서 있던 줄을 벗어났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곳으로 가서 용수철을 계단 위에 내려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끝을 잡아 다음 계단으로 당겼다. 그러자 용수철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 계단, 또 다음 계단으로 한 걸음씩 내려가는 사람처럼 용수철은 계단 끝까지 내려갔다. 다 내려간 용수철을 집어 든 채 돌아보니 줄 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길들이 마주쳐 민망한 나머지 꾸벅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뜨거운 더위에 줄 서 기다리느라 지친 사람들 에게도 재미난 구경이었던모양이었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했봤을 뿐인데 박수를 받으니 기분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렇게 나는 두어 번 더 용수철을 내려보냈다.
의도하지 않은 작은 행동이 지루함을 달래는 작은 이벤트가 되었다. 이 경험은 사람들 눈치를 봤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외친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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