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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 정리-유튜브 채널을 골라주지 않았다.

 

군대와 육아는 닮았다.

군대에 선임이나 간부에게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는 말을 듣곤 했다. 군대에서 어떤 부조리가 있어도, 이제 갓 입대한 이등병이어도 결국 다 지나간다는 뜻으로 기억한다. 육아도 비슷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애가 울어도, 이제 겨우 기어다니기 시작해도 시계는 흐르며, 결국 아이는 자란다. 당장 그 순간은 한여름 무더위 같지만, 이내 옷깃을 여미는 겨울이 된다. 딸들이 담긴 바구니를 양손에 들고 조심스레 집에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빠 오늘 간식은 뭐야?!' 소리를 듣는 것처럼...

아이들이 제법 자라니, 교육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거창하게 영어나 수학 따위 같은 것들은 아닌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가치나 지혜에 대한 교육이다. 예컨대 시간의 소중함과 기다림의 미덕은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중한 관심사다. 아이들이 30개월을 넘겼을 때의 일이다.

 

딸내미들이 자라니 저녁 차리기가 제법 수월해졌다. 그 전에는 메뉴와 요리 고민에 칭얼거림까지 받아줘야 했는데

지금은 저녁 차림은 금세 끝내게 되었고, 칭얼거림은 TV로 해결한다. 한 번은 TV를 보던 아이들이(정확히는 유튜브다) 다른게 보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아이들이 TV에 오래 집중하면 할수록 상 차리기가 수월해지니 서둘러 프로그램을 바꿔줬다.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또 불렀다. 바꿔줘도 반복해 찾길래,

"아빠 이렇게 바꿔주면 밥 차리기 힘들어 하나만 보고 있으면 안되냐?" 라고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짧았고, 빨리빨리 다른 걸 보고 싶어 했다. 부엌으로 돌아와 칼질을 하다 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때 어떻게 하셨던 거지?' 내게 물음표를 던져 생각해 보니, 나는 내 아이들처럼 보고 싶은 걸 바로바로 볼 수 없었던 일이 떠올랐다.

저녁 다섯시면 나오는 만화영화를 보려고 그 전부터 TV 앞에 자리 잡았고, 매주 일요일이면 부모님보다 일찍 일어나서 TV 앞에 앉았다. 일주일에 한 번 KBS2 TV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방영해 줬기 때문이다. 성장기의 나는 원하는 걸 바로 바로 얻어낼 수 없었고, 기다려야 했다. 기다린 탓인지 결과물에 대한 가치가 남다르게 느껴졌고 집중도 잘 할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80년대 생을 하이브리드 세대라 생각한다. 아날로그 패러다임에서 디지털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성장기로 살았고, 패러다임의 교차점에 서 있던 세대다 보니 양쪽의 경험을 무기로 삼을 줄 안다고 본다. 아날로그의 미덕 중 하나는 기다림이라 생각한다. 어떤 가치를 얻어내기 위한 시간, 숙성될 시간이다.

우리의 몸은 디지털화가 된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익을 시간이 필요하다. 예컨대 생각하는 능력이나 글쓰기와 말하기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은, 느림보 거북이처럼 시간을 투자해야 자란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대체할 수 없고 줄일 수 없다. 인내할 줄 알아야 성장할 수 있다. (AI가 있지 않느냐고? 나도 최근에 공부해 내린 결론은, AI 툴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예를 들어 AI로 글쓰기를 잘 하려면 작가 수준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원하는 걸 바로바로 얻는 삶을 사는 친구들이, 인내력을 얼마나 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까지 연구된 결과로는 현재 세상에 통용된 빠른 템포의 콘텐츠와, 선택 가능한 미디어는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른도 두시간 짜리 영화에 몰입하지 못해 십분으로 압축한 영상을 들여다보고 감독이 말하고 싶은 참맛을 알았노라고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앞으로는 긴 집중력을 가진 사람일 수록 경쟁력이 높다고 본다. 어떤 능력이든 기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고픔이 길수록 음식에 대한 고마움과 맛을 크게 느끼게 되고, 밀당 시간이 길수록 고백이 성공한 기쁨은 크기 마련이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뒤로 아이들이 채널을 고르지 못하게 막았다. 아이들이 다른 걸 보고 싶다고 요구해도, 지금 네가 선택한 것을 끝까지 본 다음에 고르라 주문한다. 차에 타 이동할 때도 TV 보여주기를 삼간다. 차창을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다리고, 생각하며 사색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원하는 게 있다면 기다릴 수 있어야 해"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