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아빠 E+엄마 I=쌍둥이는?
내가 즐기는 놀이가 있는데 사람 관찰이다.
사람들 틈에서 들여다 보기를 좋아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기도 한다. 요즘에는 주로 딸아이들을 본다. 쌍둥이라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고, 두 녀석에게서 나와 아내가 보이기도 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쌍둥이라고 하면 보통 똑같은 생김새를 가진 사람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내 딸들은 다르다. 본디 하나의 사람이 갈라져 둘이 된 쌍둥이가 아닌 애초에 다른 사람이 한 배에서 자란 이란성 쌍둥이다. ‘이런성 쌍둥이도 많이 닮았던데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내 딸들은 완전히 다르다. 생김새도 성격도 입맛도 모든 것이 다르다. 옷을 똑같이 입혀주지 않으면 쌍둥이인지 몰라보는 사람들이 태반일 정도다.
1호는 외양이 아내와 비슷하다. 자그마한 머리와 좁은 하관 고양이처럼 큰 눈과 옅은 쌍꺼풀 그리고 야리야리한 몸이 영락없는 제 엄마를 닮았다. 2호는 보고 있으면 내 딸이 맞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큼직한 체구와 긴 다리, 적당한 너비의 하관 그리고 활짝 웃는 모양새가 나와 판박이다.(다행히 이목구비는 엄마의 장점만 따왔다. 정말 다행이다.)
서로의 외양이 이렇게 제 부모를 빼닮았는데 성격은 반대다. 1호는 즉흥적이고 저돌적이며 도전적이고 가볍다. 2호는 차분하고 꼼꼼하며 겁이 많고 무겁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MBTI'로 빗대자면 1호는 'E', 2호는 'I'인 셈이다. 실은 내가 ‘E’, 아내는 ‘I’다.
그래서인지 1호 딸은 뭐든지 빨리 배운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해본다. 해보면서 잘 되는 점들을 재빨리 알아챈다. 그 모습이 신통하니 나와 아내는 칭찬을 해주곤 한다. 칭찬을 받으니 1호는 흥에 겨워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게 된다. 그렇게 1호는 말을 빨리 배웠다. 반면에 2호는 배움이 느리다. 겁이 많아 해보기를 주저한다. 무섭다는 말을 먼저 한다.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해보지 않는다. 그래서 2호는 말 배우기가 느렸다.
이렇게만 적으면 2호가 1호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 싶을 수 있다. 실상은 다르다. 1호는 빨리 배우는 만큼 흥미도 빨리 잃는다. 본인이 만족하면 금세 놓는다. 그래서인지 주의가 산만해보인다. 빨리 배우지만 깊게 성장하지는 못한다. 2호는 느리게 배우지만 오래 붙들고 있는다. 뭐든지 천천히 꼼꼼히 집중한다. 행동이 차분하니 진중한 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1호는 다리가 성한 곳이 없고 2호는 어디 다친곳 하나 없다.
두 딸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와 아내에게 필요한 숙제가 보인다.
나는 도전하되 더 깊게 닦으려 노력할 것, 아내는 고민보단 행동할 것. 이 생각은 내가 말하기를 지도할 때 종종 하는 소리다. 나는 말하기를 글쓰기를 차분하게 앉아 공부하듯이 배운 적이 없다. 행동하기가 먼저고 그 과정에서 해야 될 것과 아닌 것을 골라내며 잘하는 점은 강하게, 부족한 점은 채워왔다. 어린 시절에는 후자를 게을리하다 보니 욕도 많이 먹었고 실수도 많이 했다. 나와 반대 그러니까 딸 2호와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을 지켜보니 해보기보단 공부를 우선시하는 편이였다. 행동은 공부가 쌓인 뒤에 하려는 했다. 그 공부(준비)가 언제 끝나냐고 물으면 답을 못했다. 그러니 막상 행동하려면 실패할까 겁이 나 주저하거나 어려워한다. 주저하니 늘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행동인 셈이다.
내 딸들은 각자 이런 성향 때문에 식탁에서도 모습이 다르다. 짜장면을 먹이면 1호는 얼굴에 수염을 만들기 일쑤고 2호는 흘리는 면 가락 하나 없이 깔끔히 먹어치운다. 1호는 재빨리 식사를 마치나 치워줘야 하고 2호는 느지막이 수저를 내려놓지만 정리해 줄 것이 없다. 신기하게도 서로 영향을 주는지 1호는 점점 꼼꼼해지고 2호는 점점 행동이 빨라지고 있다.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는 모양새랄까?
오늘도 나는 부족한 진중함을 채우려고 한다. 극단적으로 치우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행동도 잘하고 깊이도 갖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러니 한 번 생각할 일을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련다.